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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한걸음 계단 오르기

우리의 심연은 모두 다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대개 아픈 기억과 상처들이 깊숙이 박혀있기 마련이다. 내가 잘 되고 내가 편안하면 지난 상처가 문제가 되지 않는데,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되면 그 상처들이 튀어나와 나는 이래서 아팠고, 나는 이래서 안됐고, 나는 이래서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원망과 한탄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를 투사하고는 한다. 

 

나는 엄마하고 사이가 안좋고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나에게는 무엇이든 잘하고 빠른 토끼같은 여동생이 있었고, 반면 나는 느린 거북이였다. 게다가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 하지 못했다. 나는 누구와도 잘 지내는 듯 했지만 속을 털어놓는 정말 친한 친구를 갖지 못했고 늘 겉돌았다. 

 

나는 아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에게 불만만을 이야기했나 보다. 엄마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품이셨고,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뛰어난 적응을 하는 그것도 조분조분 학교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동생이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을 걸면 엄마는 나를 외면하고 동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게 너무 상처였고, 그 이후로는 엄마에게도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 되어갔다. 

 

나에게는 사촌언니들이 있었는데,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잘 상대해주고 그리고 그 언니들은 용돈을 풍족하게 받아 맛있는 것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는 자주 사촌언니들을 찾았고, 우리 엄마와 사이가 안좋은 큰어머니는 나를 심하게 홀대했다. 그럼 가지 말아야하는데 그런데 나의 유일한 탈출구가 사촌언니들이었다.

 

그럴 수록 가족과 나의 거리는 계속 멀어지고 나의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다. 나에게 가족은 힘들고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나는 가장 중요한 가족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 역시 제대로 되어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 차례 심하게 아프고 마음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가족관계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아니었나 한다. 

 

남들은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이 가족보다 편했고, 그러한 남과도 잘 지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정하는 것이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나에게만 집중해있어 타인과의 미묘한 감정 흐름을 캐치하지 못했다. 칭찬에 인색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고 안물안궁 그냥 무기력하고 안으로만 오종종한 정말 매력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떤 계기로 마음이 안정되면서 점차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도 눈을 뜨면서 표현도 하게 되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얼마나 큰 발전인지 모른다. 

 

그러면서 엄마의 장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하고, 부지런하고, 프로 주부라는 강한 자의식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 성당을 다니시면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어지간해서는 잔소리도 하지 않으시고, 누가보아도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고, 사람들은 모두 엄마를 사랑한다. 내 나이 또래의 성당교우들이 모두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르고, 맛있는 곳이나 좋은 풍광이 있는 곳에는 엄마를 모시고 가기도 한다. 

 

그런 엄마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고 엄마를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늘 어린 시절의 상처로 엄마를 원망했고, 내가 불안정한 이유는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겉으로는 잘 지냈다. 

 

그러던 것이 터진 것은 경제적인 문제로 내가 불안정해진 이후였다. 갑자기 나는 목소리를 내며 내가 힘들었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엄마 때문이라도 엄마를 할퀴고 상처를 주고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가난이라는 것은 불화를 만든다. 안정되고 편안할 때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불안정하고 가난하면 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참지를 못하고 아픔을 토로하고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리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최소한 엄마가 '니가 그랬었니?'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 라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은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화를 내셨다. 최선을 다해서 길렀고, 거기서 얼마나 더 해야하냐는 것이다. 먹이고 가르쳤고, 그러면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스스로 헤쳐나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세계에서 가정교육이라는 것은 먹이고 가르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내가 거북이고 동생이 토끼라는 것은 요즘 세상 젊은 주부들이나 아~ 내 아이가 하나는 토끼고 하나는 거북이야. 그러니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것이지, 나의 엄마에게 그때 그것을 알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에 사리분별을 배우지 못했으나 나 어렸을 때는 정말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만해도 힘들었던 시절이라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상황이 좋을 때는 비난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원망할 수 있지만 커서는 스스로 살아내야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무너진 것이다. 

 

엄마는 느닷없이 잘 쌓아놓은 인생의 성채가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같이 힘들고, 갑작스러운 비난에 당황하고 화를 내신다. 

 

엄마의 기억속에서 나는 공부를 잘하고, 학교에 찾아갈 때는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학교 선생님들한테 엄마는 최선을 다했으며 한없는 사랑과 축복으로 나를 기르셨다. 

 

나의 고통스럽고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나의 과거는 엄마의 기억 속에는 없다. 

 

엄마의 기억은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화목한 것이다. 그런 엄마의 기억을 내가 흔드는 것을 엄마는 용납할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엄마를 흔들고 싶지 않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기억은 개인적인 것이고 쉽게 변형되고 왜곡되고 잊혀진다. 내 기억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기억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역사를 살았고 엄마는 그런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누구의 기억이 옳고 누구의 기억이 틀리다고 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은 내것이고 타인의 기억은 타인의 것이다. 내것이 옳다고 타인의 기억이 틀렸다고 결국 항복을 받아낸다고 나는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엄마의 기억을 존중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에게 홀대당했던 그 시절에도 불안하거나 당황스럽거나 무슨 일이 생길 때는 저절로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안계시더라도 혼잣말처럼 엄마를 외쳤다. 

 

비록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나에게 집중해주지 않더라도, 엄마가 곁에 없어도 나는 항상 엄마를 의지해온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시간을 이제는 사랑하면서 보내고 싶다. 엄마에게 힘이 되는 딸이 이제는 되어드리고 싶다. 나도 이제는 안정을 찾아야 되겠다.

 

엄마 상처 드려서 죄송해여. 행복하세요.